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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한계, 근육의 정점 '로니콜먼' (Ronnie Cole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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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니 콜먼'(Ronnie Coleman)

 

1964. 5. 13. 미국 루이지애나주 중산층의 가정에서 태어난 로니콜먼은 홀 어머니 아래서 자랐습니다.

지금 보기와는 다르게 어릴적 그는 매우 영특한 학생이었습니다. 공부를 꽤 잘했던 로니는 텍사스 그램블링 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하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회계쪽 성적이 좋았던 로니는 담당교수의 추천으로 회계학을 전공하게 되었죠.

 

체격이 원체 좋아서 중간 중간 미식축구나 파워 리프팅을 즐기거나 아마추어 선수로도 활동하긴 했었지만

어디까지나 취미였지 이것으로 돈벌이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대학생활 내내 꾸준히 좋은 성적을 유지했던 똑똑한 덩치, 로니콜먼은 지식을 쌓으며 평범한 회사원의 삶을 꿈꿨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생겼습니다.

생각보다 취직이 어려웠던 겁니다. 로니콜먼의 말을 빌리면 회계분야에서는 경력직을 원했기 때문에

당시 신입으로 취업을 하기가 너무나 어려웠었죠. 아무리 미국이라도 취업난 만큼은 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로니는 동네 피자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죠. 매일 남은 피자를 먹었고 피자가 질릴때쯤엔 옆 햄버거 가게에서 피자와 햄버거를 바꿔먹었습니다. 또 햄버거가 질리면 피자와 치킨을 바꿔먹는 생활을 이어나갔죠.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에 지칠때쯤 로니의 눈에 한 전단지가 들어옵니다. 

바로 파트타임 경찰관을 모집하는 공고였죠. 곧바로 경찰관 모집에 지원한 로니는 적성에 맞았는지 꽤나 좋은 실적을

달성해가기 시작합니다.

 

뭐든지 최선을 다하는 성격과, 영특한 머리, 그리고 타고난 힘은 경찰관을 하기에 아주 적합한 조합이었습니다

 

 

경찰 일을 병행하면서 퇴근후에는 체육관에서 운동을 즐기던 로니를 보며

주변사람들은 프로 선수생활을 해보는게 어떻겠냐고 권유했죠.

자신이 어느정도 재능이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대회 상금도 거의 없었고 직업으로써의 파워리프팅에

대한 생각이 없던 로니에게 한 남자가 찾아옵니다.

 

그는 메트로 플렉스 짐의 오너이자 마스터 트레이너였던 브라이언 도슨이었죠.

도슨은 딱히 식단관리를 하지 않는데도 울그락 불그락 튀어나온 로니의 혈관과 이두근, 그리고 그의 무시무시한

근력은 파워리프팅 보다는 보디빌딩에 적합한 유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보디빌딩에 크게 관심이 없던 로니콜먼은 권유를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도슨의 달콤한 유혹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시합에 나가기만 하면 트레이닝 지도는 물론, 체육관 평생이용권과 보충제를 무료로 지원해주겠다고 딜을 던졌죠.

아무리 로니콜먼이라도 이건 이건 못참죠. 특히 파워리프팅 대회에서는 1등을 해도 상금이 없었는데 보디빌딩 시합은

큰 상금까지 있었던 터라 로니는 이참에 보디빌딩을 시작해 보기로 결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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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제와 헬스클럽 평생이용권으로 로니를 꼬셔버린 이 사건은 보디빌딩의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들었죠.

 

파워리프팅에서 보디빌딩으로 전향을 했지만 로니콜먼은 생각보다 쉽게 적응할수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두 종목 모두 점진적 과부하를 필수적으로 해야하는 운동이었고, 로니콜먼의 성격 자체가 낙천적이고 주변의 충고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해오던 트레이닝을 고집하지 않고, 새롭게 배우는 훈련과 영양 프로그램을 즐겁게 수용했죠.

 

로니콜먼은 보디빌딩식 운동법을 배우면서도, 파워리프터가 들법한 무게로 훈련을 하는것으로 유명했는데,

대표적으로 142kg 워킹런지, 90kg 덤벨프레스. 220kg 바벨로우, 366kg 스쿼트와 데드프리트, 그리고 그 유명한 1톤의 레그프레스가 있었죠.

 

 

이렇게 로니콜먼은 첫번째 메이저 대회에 출전 되는데, 1990년 미스터 텍사스 대회였습니다.

첫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력자들을 제치며 당당히 1위를 차지한 로니는 이때를 기점으로 보디빌딩에

제대로 재미를 붙이게 됩니다.

 

스스로의 재능에 대해 눈을 뜨고 1년동안 어마무시한 고중량 훈련을 마친 로니는

1991년 IFBB 월드 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도 1위를 달성하며 27세의 나이로 프로카드를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1년만에 아마추어 보디빌딩계를 재패한 로니는 이제 본격적으로 프로무대를 향하게 되었죠.

 

 

몇년 후, 1994년 로니콜먼은 드디어 보디빌딩 대회의 최고 권위, 진짜 왕좌를 두고 싸우는 보디빌딩의 정점.

미스터 올림피아에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미스터 올림피아는 그 권위에 맞게 참가 자격도 엄격했는데,

특정 대회에서 일정 순위에 오르거나 특별히 초청받은 이들에게만 자격이 주어지는 꿈의 무대였죠.

 

지금 로니콜먼의 업적으로 보면 첫 올림피아 대회부터 정점을 찍었을것 같지만

로니는 이 대회에서 15위를 기록합니다.

그리고 1992년부터 1994년 사이에 로니는 단 하나의 트로피도 획득하지 못했습니다.

 

로니콜먼은 포기하진 않았지만 지속되는 패배에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동료에게 속마음을 이야기했고 동료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보디빌딩 대회에서는 선수들이 암묵적으로

스테로이드나 성장호르몬을 사용을 하고 있었고, 미스터 올림피아에 출전한 거의 모든 선수들이 그럴것이라는 말이었죠.

 

당시 로니콜먼은 약물을 사용한 적도 없었고, 약물에 대한 정보도 없었던 터라 이는 꽤나 충격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이미 보디빌딩에 빠져들었고,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자 했던 로니는 이 위험한 길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어떠한 대가라고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로 말이죠.

 

이때부터 전문적인 올림피아 코치들과 함께 약물 스택과 훈련법을 적용해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하나 특이한 것은 체계적인 훈련법을 곧잘 수행했음에도 파워리프팅 방식의 고중량 훈련을 포기하지는 않았다는 것이죠. 더 효율적이라서 그랬다기 보다는 로니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운동 방법이었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1998년.

로니콜먼은 만년 하위권을 벗어나 처음으로 미스터 올림피아를 우승하게 되었습니다.

이때까지만해도 근육의 사이즈와 선명도는 물론, 전년도 대회에서 얼마나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는지,

또 우승에 얼마나 가까웠는지 같은 정치적인 부분들도 평가에 반영되었기 때문에 아무도 로니콜먼이 우승을 차지할것 같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죠. 바로 본인조차 말이죠.

 

그렇게 첫 우승을 한 후에 로니는 이제 본격적으로 전설을 써내려 가기 시작합니다.

1998년 첫번째 우승을 기점으로, 1999년 부터 2005년까지 8년간 단 한차례도 왕좌를 내준적이 없으니 말이죠.

보디빌딩 역사상 뛰어난 선수가 가장 많았다고 평가되는 1998~2010년 사이에 홀로 우승을 8번이나 했다는 것인데,

바로 이점 때문에, 올림피아 우승횟수가 같거나 비슷한 선수들에 비해서도 더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여덟번의 우승 기록은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깨지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고 하죠.

이렇게, 영원히 지속될것 로니콜먼의 시대도 마지막 순간은 있었습니다. 2006년 가장 친한 친구이자 영원한 라이벌 제이 커틀러에게 우승을 내어주고 2007년 미스터 올림피아를 마지막으로 로니콜먼은 은퇴를 선언합니다.

 

 

그 이후 로니콜먼의 삶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엄청난 고중량 훈련과 스테로이드 사용으로 인해 육체는 한계치를 넘어서며 망가져 있었습니다.

고관절은 완전히 무너졌고 괴사한 부분들이 많아 아예 교체를 해야했습니다. 척추 디스크는 불쌍하리만큼 닳고 닳아 있었죠.

11시간이 넘는 허리 수술을 7번이 넘게 받아야 했으며 휠체어에 의지해야만 거동이 가능해 졌습니다.

보통사람이라면 무너져야 할 이런 순간에도 그는 챔피언의 면모를 보여줬습니다.

사실 로니콜먼이 전설로 평가받는 이유는 당연히 인간의 한계를 보여줬던 압도적인 근육과 그의 업적에 있기도 하지만, 특유의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로 사람들의 롤 모덜이 되기 때문도 있죠.

 

자신의 분야에서, 특히 육체를 사용해 정점을 찍은 사람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로니는 늘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웃으면 팬들과 소통하고 죽음에 가까운 고통속에서도 희망을 이야기 하고 다녔죠.

여기에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

로니콜먼을 치료하던 의사가 그의 고통스런 치료생활을 지켜보다 못해,

보디빌딩으로 인해 몸이 완전히 망가졌는데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로니콜먼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후회하는 건 단하나도 없어요. 나는 이미 올림피아를 여덟번이나 우승한 사람이라고요.

내가 후회하는건 딱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때 800파운드 스쿼트를 네 번할 수 있었는데 두번밖에 못한것.

그게 내가 하는 유일한 후회입니다"라고 말이죠.

 

또 로니콜먼은 스테로이드와 이뇨제 같은 약물사용에 대해서 늘 시원시원하게 인정하며 위험성을 솔직하게 알리려고 노력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는 현재까지도 운동을 해서

는 안되는 몸상태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진통제를 맞고 사랑하는 운동을 하러 헬스장으로 향하는 그를 주치의들도 막지 못한다고 합니다.

 

 

https://youtu.be/kIS-A8KC38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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